테크노트 PHP

ㆍ작성자	김태룡
ㆍ작성일	2003-07-17 (목)

ㆍ추천: 0 ㆍ조회: 1549

부모님 살아 생전에(유종필에게 화답함)
오랫만에 올린 종필이의 장타를 읽고 감회가 새롭다.
역시 기자의 필력인지라 글 솜씨가 프로페셔널하다.
다만 내가 글 안올린다고 화를 내서 억지로 올렸다고 사족을 단 것은 아쉽다.

나와 종필이의 가장 큰 차이는 그는 막내이고, 나는 장남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그에게는 부모가 안계시고, 내게는 정정하신 부모가 생존해 계신다.

나는 종필이 어머니가 해 주신 밥을 잘 얻어 먹은 기억이 난다.
1971년 초여름 어느날 불쑥 찾아온 막내아들 친구에게 강낭콩과 쌀이 좀 섞인 보리밥을 두벌 불때서 한상 차려 주셨다.
그리고는 삼밭에 나가 절로 익은 딸기를 한바구리 담아 오셨다.
온상이 아닌 노지에서 자란 딸기라서 그런지 크지는 않았지만 알이 여무지고 맛이 참 달았다.

종필이는 어머니 이야기만 썼는데, 또 다른 한분 그의 아버님도 내게 깊이 각인된 훌륭한 어른이셨다.
해보면장을 지낸 학자이셨는데 고고하고 깔끔하신 점은 오늘날의 종필이 이미지와 비슷했다.

종필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그 어르신들도 서울로 올라와서 생활하셨다.
애들 키우느라 가진 재산을 다 써버리시고 재산관리에 밝지 못하셨던 관계로 노후가 상당히 힘드셨다.
그 분들 세상을 뜨시기 전에 내가 아직 철이 덜들고 가진 돈이 많지 않아 맛난 음식 한번 대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어제 초복씻이를 하려고 부모님 모시고 5남 1녀(매제가 대리 참석)가 보신탕 집에서 회동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복날을 챙겨서 자식들이 대접해 주시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반면에 복날을 그냥 넘어가면 상당히 섭섭해 하신다.
보신탕 맛이야 별게 있겠는가?
자식들은 그저 노인들이 얼마나 드시는지,
혹시 고기드시다가 속이 불편하시지나 않으실지 눈치를 보면서 갖은 아양을 다 떨어댔다.
우리 가족이 다 모이면 형제들은 아버지를 골려먹는 일이 다반사인데,
어제는 술이 취할 때까지 드시도록 권해 보려고 난리를 쳤다.
"사나이가 술잔을 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
"오바이트할 때까지 드시면 용돈을 백만원 드리겠다."
"아니 내가 기생집으로 모시고 가서 한판 내겠다."
그런데도 이 영감님은 끝까지 꼿꼿한 자세로 정량을 드시고는 잔을 엎어버리신다.

우리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서 한바탕 질펀하게 놀았다.
어머니를 안고 부루스를 치다 보니 이 양반 키가 무지 작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블루스를 치던중 귀에 대고 "알라뷰" 했더니 알아듣고는 가슴에 기대온다.
그리고는 아버지 등뒤에 붙어 아버지랑 "홍콩아가씨"를 이중창으로 불러제꼈다.
세째 동생은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면서 춤을 춰 대는데 기가 펄펄하다.
부모님의 눈가에 물기가 촉촉히 어리신다.

얼마 안있어 어차피 땅으로 돌아가실 분들,
이제 머지 않아 힘이 부치시면 좋은 곳으로 여행도 못가실 것이고,
맛난 음식도 못드실 것이다.
내가 부모님을 즐거이 모실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재미난 이야기도 해드리고 맛난 음식도 사드려야겠다.

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들,
형편이 여의치 못해 부모님을 자주 못뵙는 친구들에게 이런 글을 쓰면 누구 약올릴 생각이냐고 할까봐 걱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51회 동기들끼리는 이런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는 뚜렷한 공감대가 있다고 믿기에,
그리고 지금 나에게 있어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일이 가장 절실한 일이기에 이 글을 실으니 양해바란다.

유종필이가 올린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다.
우리는 그가 우리 동기 홈페이지에 처음으로 방문하여 왜 그런 토픽으로 인사를 시작하고 있는지 이면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내 짐작으로는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친구들아,
유종필은 지금은 어려운,
그러나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겠다는 뜻을 세운 정치인이다.
그에게는 이 어지러운 정치판을 정비해 나가겠다는 의지와 지략이 있다.
얼마 전부터 그에게 희망을 주는 여러 종류의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사정상 지금 다 말하기는 어려우니 미루어 짐작바란다.

비록 그의 정치 역정에 드라마틱한 곡절은 있었으나,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훌륭한 정치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앞으로 그 문제를 더 생각할 기회가 오겠지.

무더위를 견디며 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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