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reation
여가생활

 

 

 

작성자 김태룡
작성일 2005-05-26 (목)
ㆍ추천: 0  ㆍ조회: 2938   
실크로드 여행기5

 

 

 

양관에서 돈황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西千佛洞이 있다

오아시스가 만든 시냇가 절벽에 조성된 이 굴들은

나름대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넘친다.

우리는 오늘 돈황 막고굴의 맛보기를 본 셈이다.

  황사가 일어나니 차가 굼벵이 걸음이다.

 

서천불동을 떠나 돈황시내로 들어 오는 길에 황사가 일었다.

주변이 컴컴해 지면서

50M 앞을 분간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모래바람이 몰아닥친다.   

사막의 한가운데 황사의 발원지에서 직접 황사를 만난 것이다.

모든 차들이 서행한다.

차체가 작고 중심이 높은 소형버스는 아예 길옆에 서 있다.

 

아직 황사가 멎지 않은 돈황 시내에서 지칠대로 지치고,

모래먼지에 끈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우리는 돈황박물관을 찾았다.

돈황전체의 역사와 사막의 관문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역사와 문화유적에 미친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양관에서 발굴돈 竹簡                           전돌들

 

호텔로 돌아와 씻고 나니 살만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발맛사지를 마치자

55세 이하의 청년들이 돈황시장에 나가서 술판을 벌이고 들어왔다.

나는 법사님, 현지 가이드와 함께

내일 莫高窟을 안내해 줄 李先이라는 국보급 연구원을 만나 스케줄,

특별관람료 협상에 참여했다.

 

이른 아침 새벽밥을 먹고 서둘러 막고굴에 도착했다.

관리원들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특별관람료는 720웬으로 정해졌다.

우리는 막고굴에 목숨을 건 사람들처럼

미술적 가치가 높고 희소가치가 큰 동굴을 더 많이 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동굴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남쪽 끝 작업자 주거시설
      

     날아 갈 듯한 막고굴 일주문


    

     전면에 보이는 막고굴 대탑전. 26m나 되는 멋진 부처님 입상이 모셔져 있다.

막고굴은 4세기에 동진시대 때부터

원나라 연간인 1,300년대까지 1,000년에 걸쳐

돈황 서쪽 20Km지점 鳴沙山자락 벼랑을 파고 들어가 조성한 인공 동굴들이다.

절벽의 길이 2Km, 1천개 이상의 굴중 492개만 발굴되었고,

펼쳐진 벽면의 그림 면적 50,000㎥를 자랑한다.

각 동굴들은 예배용으로, 참선용으로

혹은 시주자가 뭔가 기념할 일이 있을 때 조성해 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갖고 있고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난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동양을 강점해 오던 서구 제국주의

문화재 약탈팀의 눈에 막고굴이 들어 왔다.

그들이 이 보물을 그대로 둘 리 없었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수많은 그림들, 전적들,

그리고 조각품들이 마구잡이로 반출되었다.

 중에 신라의 慧初 스님이 쓴 <往 五天竺國典>이 있다.

이 문서는 藏經洞이라는 17호굴에서 발견되었다.

 

1,000년간이나 굴입구가 밀봉되어 있었으나

19세기말 관리인이 우연한 기회에 입구를 열어보게 됨으로써 햇빛을 보게 된다.

여기서 무려 45,000여점의 전적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인    가 그 중 몇천점을 가져갔다.

한학에 조예가 깊던 프랑스인 페리오는 그 중 가치가 높은 것을 중심으로

또 몇천점을 가져간다.

미국인    는 자그맣고 예쁜 불상 및 전적들을 훔쳐갔다.

여기서 입수된 문화재들이 각국의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면서 그 내용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나중에는 일본의 고미술학자 오오따니가 수많은 미술품을 훔쳐갔다.

그 중에 절반은 조선총독부 미술관에 두었는데, 해방과 함께 우리 소유가 되었다.

올 10월에 용산의  국립박물관이 개관되면

실크로드관을 두고 상설 전시하게 될 것이다.

 

중국인 연구원은 문화재를 훔친 도둑놈들이라고 분개해 한다.

그러나 이런 점도 생각해 보자.

청나라 정부는 외국에 강탈당하고 남은 문화재를

북경으로 운반하여 보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운반도중에 문화재수집상에게 매수당한 관리들이

그 전적들의 태반을 팔아버렸다.

 

누가 알겠는가,

문화혁명기에 홍위병들이 쓸데 없는 물건이라며 불이라도 질러버리지 않았을지.

실제로 실크로드 일대의 동굴중에는

문화혁명때 처절하게 피해를 입은 곳이 적지 않다.

오히려 서양 각국의 박물관에 온전히 보존된

그 엄청난 자료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敦煌學>이라는 학문이 생겨났다.

 

그 많은 자료가 왜 그렇게 장경동 한 곳에 쌓여져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장경동은 긴요하지 않은 문서를 처분했던 폐기물 처리장이었다.

대답이 재미있다.

 


211.194.62.85 최준호: 부럽다. 태룡아
나는 대만에서 시에롱후이 교수님에게 돈황학을 공부했으면서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 봤구나. 나중에 많이 얘기해주라 -[06/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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