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reation
여가생활

 

 

 

작성자 김태룡
작성일 2005-05-26 (목)
ㆍ추천: 0  ㆍ조회: 2625   
실크로드 여행기4-陽關과 玉門關


   이제 여행이 본궤도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따라서 난주에서 돈황까지 800Km의 하서주랑을 

   기차로 가기로 했다.

   하서주랑의 북쪽에는 만리장성이 쌓아져 있고

   무위,장액,주천,안서라는 큰 도시가 중간에 있다.

   이른바 漢武帝가 서역을 지키기 위해 둔 漢西軍 터들이다.

   그 때 한무제는 동쪽의 낙랑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漢四軍을 둔다.

   기차는 14시간이나 계속 달렸다.

 

    나는 여행중에 총무를 맡았다.

   공금관리과 사사로운 일정결정, 일행 치다꺼리를 챙기는 것이 임무.

   침대칸에 있는 우리 일행에게

   여행사에서 준비한 도시락,김치,컵라면,과일 등을 고루 나누어 주었다.

   여행사 <실크로드>가 우리를 위해 배려하고 준비하는 정성은 감동적이었다.

   그 많은 수를 먹이겠다고 매끼니마다 김치와 고추장을 제공하고,

   컵라면도 1인당 두개씩 준비해 왔다.

   여행사 직원과 현지 가이드가 그 짐을 다 끌고 다니다 식사 시간에 풀어 내놓고,

   다시 식사가 끝나면 챙겨서 길을 떠난다.

   “아이고, 나는 여행사는 못할 것 같다.

   매끼니 차려주는 밥먹기도 귀찮은데 저 힘든 일을 어찌하나?

 

        
  차창 너머 기련 산맥에 만년설이 하얗다.

 

 

    일행들이 4인실 침대칸을 배정받아 한담을 하면서 차창 밖의 경치를 즐긴다.

   창문너머 계곡에는 황토 언덕을 배경으로

   노란 유채꽃과 진초록 밀밭이 강렬한 대비를 보이며 여행객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식물보기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가지고 간 소주며 백주를 나누어 마시다가 흔들리는 침대에서 곤한 잠을 잤다.

 

    중국의 발전상은 기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철도의 선로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는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고,

   특급 기차답게 침대보며 세간살이도 단정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운행시간도 정확했다.

   아들놈이 대학에 가면 기차에서 잠을 자면서 중국여행을 해보라고 권해야겠다.

 

    14시간동안 여행하고 새벽에 눈꼽만 뗀 채 내린 곳은 돈황역.

   그러나 거기서 실제로 돈황까지는 120Km나 남아 있고, 그 동네 지명은 柳圓이다.

   우리는 다시 버스로 갈아탔다.

   실크로드 중후반부의 갈림길,

   즉 타클라마칸 사막 초입 天山南路와 天山北路가 갈리는 현장을 보자는 것이다.

   그 목적지는 玉門關과 陽關이라는 옛 關門터였다.

 

    그 곳은 돈황 시내를 관통하여 다시 2시간을 더 가야 나온다.

   돈황까지 가는 길도 사막이고, 돈황에서 옥문관까지도 사막이다.

   도합 4시간 동안 버스를 타는 동안에 딱 오아시스 두곳을 보았을 뿐이다.

   돈황은 두 곳 오아시스중 하나.

   오아시스를 제외하면 눈에 보이는 오직 모래와 자갈로 뒤덮힌 사막이고,

   그 가운데 낙타풀이 간간히 무리지어 식생하고 있다.

   검불덩어리처럼 먼지를 쓰고 앉아있는 그 낙타풀 덕분에 실크로드는 유지되었다.

   낙타는 혀에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가시가 뻣뻣한 그 풀은 뜯어 먹고 사막을 건넜다.

 

       

타틀라마칸 사막이 시작되는 양관 부근     어느 사찰의 뜰에서 찍은 어린 낙타풀

 


    一望無除 의 지평선까지 펼쳐진 사막길을 내달리는 버스에서

   우리는 열여섯시간째 차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다들 한마디씩 한다.

   어이, 옛날 혜초,현장스님 같은 구도자의 길을 생각하며 참세.

   이제 겨우 오전 9시다.

   몸은 노곤하지만 오늘 여행은 이제서야 시작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보자고 이렇게 멀리 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양관은 그냥 흙더미 하나뿐

마침내 玉門關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여자의 그것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한 玉門關에 대한 궁금증이 제법 컸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사막 언덕에 뎅그마니 서 있는 흙덩어리 하나 뿐이다.

옛 關門의 흔적이란다.

주변에는 10만평쯤 되어 보이는 소금기가 더덕더덕 내려 앉은 호수가 있고,

거기에 이름모를 잡초들이 우거져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120Km떨어진 곳에 陽關이 있다.

 

옥문관 부근 말라붙은 호수 주위에 잡풀이 나 있다.

 
      이곳 두군데의 關門은

외부의 침략자를 알리는 척후기지로서 봉화대를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지나가는 隊商을 상대로

통행세나 거래세를 받아내는 稅關의 역할을 했다.

사막 한가운데 흙벽돌로 쌓은 그 관문이

수백Km 내의 유일한 오아시스를 점령하고 있었기에

막을 건너는 그 누구도 거기를 거치지 아니할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는 天慧의 지형이다.

 

양관 봉화대 터

한나라의 한무제가 관문을 설치한지 어언 2,100년!  

고향을 떠나 이곳 열사의 땅에서

둔전을 일구던 장수며 병사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도대체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려고 그 많은 희생을 감내해 왔던가?

陽關과 玉門關은 그러한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遺舊들이다.

자연을 극복하고 변방의 힘에 맞서 이긴,

오늘날의 中華를 이루어 낸 증거로서 사막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中國의 漢族은 수천년 역사를 이어오며

변방의 오랑캐를 복속시키고 몇차레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첫 통일을 진시황이 이루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 전체 강역을 지배한  것은 한나라의 한무제가 최초다.

그 뒤로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이 큰 국가로서의 위세를 떨친 바 있다.

그러나 언제든 국가가 성대해지면

건국 후 100년에서 150년 사이에 통치조직 내부에서 긴장감이 해이되고

사치와 향락, 부패가 머리를 든다.

 

복원된 양관 성내의 한무제 동상 앞에서

 

 

이 때면 변방이 시끄러워진다.

匈奴,鮮卑,저,羌,갈이라고 칭하는 오랑캐가 힘을 키워

중원을 넘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란 외부 오랑캐의 침략이라는 자극에 대응하면서

漢族이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던 과정이라고 이해된다.

 오랑캐들이 전국시대 이후 수나라 때까지 魏晉 南北朝,

그리고 송나라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고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5胡 16國을 통치한 바 있다.

 

그 오랑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수천년에 걸쳐 오랑캐의 한족화가 진행된 지금

한족은 56개 소수민족을 포함한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한다.

몇 천년을 이어 내려 오면서 강력한 힘응 자랑하던 거의 모든 민족이

中華라는 열탕기 속에서 녹아버린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漢族의 흡인력이다.

 

현재는 옛 오랑캐 가운데 위구르란 이름의 回族과 藏族인 티벳족 정도가

자치주를 이루면서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그나마도 중앙정부의 소수민족 보호정책에 의해

각종의 시혜와 보조를 받아 겨우 연명해 간다.

중원의 한족과의 경쟁에서 탈락해 버린 그들이 다시 힘을 얻기란 어려워 보인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지더라도 멀리 초원이나 오아시스로 도망가서

힘을 재충전한 후 중원을 넘보곤 했지만,

이제는 통신과 교통이 발달로 중앙집권적 통치가 한결 수월해졌다.

 

 해외에 망명중인 티벳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금년초에 티벳사람의 문화적, 종교적 생활을 보장하고 이해해 준다면

자치운동을 포기하겠다고 했던 사정을 이해할 만 하다.

 

손문의 독립운동부터 시작하여

서양오랑캐를 무려 40년의 전쟁을 통해 몰아내고 집권한 모택동의 공산당은

내부전열을 정비한 다음

1972년 마침내 죽의 장막을 걷고 서방세계에 얼굴을 내민다.

닉슨과 모택동의 핑퐁외교가 한 역할을 했다.

다시 2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2년부터 외국자본을 들여다가 자본주의식 개발정책에 발동을 건다.

전국 각지 31개 지방자치단체별로 각개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은 

지금 크게 변모.발전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5천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와 방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고,

그 젊은 힘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중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이 강할 때는

주변국이 늘 블랙홀처럼 중국속으로 말려들어가곤 했다.

유일하게 우리 한민족과 베트남족만이 중국을 이겨내며 살아 남았다.

앞으로도 우리민족이 번성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 사막에 남겨진 두덩어리의 흙더미에서

2천년전 서북을 개척하던 漢族의 강인한 정신을 보았다.

이번 여행은 이것을 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211.36.149.222 박승식: 양관이면 唐 王維의 送元二使安西에 나오는 양관아닌가? .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渭城 아침 비는 먼지만 축였고
客舍 앞 버들 빛만 더욱 눈부시구나.
그대 이 술 한잔 더 들소
陽關을 지나면 술 한잔 권할 친구도 없을거요.
-[06/25-19:18]-
 
  0
3500
20 무등산 옛길(스토리텔링) [4]+2 껌둥이 2011-01-05 1898
19 진도향란 여름나기 [3] 정석구 2009-08-17 1950
18 珍島香蘭-신재형에 감사 [5] 정석구 2009-03-12 2622
17 정석구의 지리산 암자 순례기 [1] 김태룡 2007-12-09 2688
16 바이칼여행기2 [1] 정석구 2005-12-11 2934
15 바이칼 여행기 [1] 정석구 2005-08-21 3556
14 실크로드 여행기6. 살아 생전에 이런 감격을.... 김태룡 2005-05-26 3220
13 실크로드 여행기5 [1] 김태룡 2005-05-26 2937
12 실크로드 여행기4-陽關과 玉門關 [1] 김태룡 2005-05-26 2625
11 실크로드 여행기3.-맨얼굴의 부처님 김태룡 2005-05-26 2701
10 실크로드 여행기2.-佛敎 가이드계의 至尊 金春女씨 김태룡 2005-05-26 2398
9 실크로드 여행기1.-황토와 회청색 귀리밭 [2] 김태룡 2005-05-25 256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