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되기 전에는 볼 수 없는 국보급 북한 유물들이 많은데 월드컵 열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관 내부. 월드컵 열기 때문인지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관에서 13일부터 전시중인 ‘평양에서 온 국보들-북녘의 문화유산’ 담당자인 오영찬 학예연구관은 진귀한 북한 유물들을 90점이나 전시하고 있는데도 관람객이 적은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오 연구관은 “전시물 중에는 북한의 국보 50점과 준국보 11점이 포함돼 있다”면서 “이처럼 대규모의 유물들이 북한 밖으로 나들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때마침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부분 개보수를 하는 덕택에 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고려 태조상'. 남북 합의로 중요 부위를 가린 채 전시됐다.(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평양에서 온 국보들-북녘의 문화유산’ 특별전의 대표작품은 오 학예관의 설명대로 이번에 처음 일반에게 공개되는 ‘고려 태조상’이다. 북한에서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 작품은 1992년 개성의 고려 태조 왕건릉에서 출토됐다.

951년경 제작돼 개성 봉은사에 모셔진 '고려 태조상’은 왕실의 가장 신성한 상징물인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었다. 발견 초기에는 ‘청동불상’으로 알려졌으나 연구결과 고려 태조 왕건의 동상으로 밝혀졌다.

오 연구관은 “애초 북측은 ‘고려 태조상’의 전시요구에 난색을 표하며 반대했었다”며 “이유는 왕의 동상인데 옷을 벗은 상태 그대로 전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어서 중요부분을 가리고 전시하기로 겨우 합의했다”고 귀띔했다.

오 연구관에 따르면 ‘고려 태조상’의 특징은 실물크기로 재현된 동상의 모습 속에 유교와 불교와 샤머니즘이 집약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려 태조의 모습을 인간보다는 부처의 형상에 가깝게 묘사하다보니 무인 출신으로 기골이 장대한 것으로 알려졌던 왕건의 팔·다리와 손가락 등이 매우 가늘고 섬세하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남측보다 앞서 있다는 북한 고고학의 실태를 직접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광복 이후 북한은 활발한 고고학 발굴조사를 진행해 ‘한반도 구석기시대 부재론’이나 ‘금석병용기시대론’ 같은 일제 강점기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극복했다.

오영찬 연구관은 “북한은 사회주의 유물사관에 기초해 한반도 문화의 기원을 고고학에서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이 부문의 대표적인 학자가 고고학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며 북한 고고학연구소장을 지낸 도유호 씨”라고 설명했다.

북한 고고학계는 또 1960년대에 단군신화 속의 존재로만 여겨졌던 고조선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국가임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고조선의 중심지를 중국 요령성 일대로 보던 학계에서는 최근 연구결과를 토대로 평양 일대로 파악하고 있다.

한반도의 구석기문화를 상징하는 상원 검은모루 출토 구석기들.

서포항에서 출토된 뼈피리. 새의 다리뼈를 가공해 만든 것으로 13개의 구멍을 뚫었다.(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북한 학계가 발굴한 한반도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시대 유물의 대표작이 이번에 전시된 ‘상원 검은모루 출토 구석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인 ‘서포항 출토 뼈피리’, 청동칼과 칼집 등이다. 고조선 시대를 구별하는 유물인 비파형동검과 미조리형토기도 눈에 띈다.

고구려 평양성 명문석. 평양성을 쌓은 고구려인의 벼슬과 이름이 적혀 있다.

고구려·발해 시대로 넘어오면 ‘고구려 평양성 명문석’과 삼족도가 그려진 ‘금동맞뚫음장식’, 발해 시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는 장식물인 ‘발해 치미’ 등의 고고역사품을 고고 역사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중국 흑룡강성에서 출토된 발해 치미를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문화적 계승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시대 유물 대표작으로는 온몸을 장신구로 화려하게 장식한 ‘관음사 관음보살’과 개성시 불일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3개의 금동소탑 등이 있다.

북한 국보로 지정된 김홍도의 선녀도. 산에서 캔 영지를 바구니에 가득 담고 내려오는 영지선녀의 모습에서 거침없는 김홍도의 필치를 볼 수 있다.(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북녘의 문화유산’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전시관 마지막 방에는 조선시대 김홍도가 영지선녀의 모습을 그린 ‘선녀도’와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 정선의 ‘옹천의 파도’ 등 조선시대 유명화가들의 회화명품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장승업이 서울화단을 주도하던 시기에 평양화단을 이끌던 대표적 화가 양기훈이 10폭 병풍에 그린 ‘붉은 매화’(북한 국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양화단을 주도하던 양기훈의 '붉은 매화'.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과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관장 김송현)의 첫 번째 교류사업인 이번 특별전은 13일부터 시작돼 8월 16일까지 현 장소에서 계속된다. 이후 대구로 자리를 옮겨 8월 26일부터 10월 26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을 맞은 후 10월 말 금강산을 통해 조선중앙력사박물관으로 반환된다. 전시물의 규모나 수준을 감안할 때 감상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