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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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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8-02-04 (일)
ㆍ추천: 1  ㆍ조회: 5863   
#[하얀거탑]이야기2
 
# 문화방송 MBC가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게 시달려서 가장 나쁜 방송으로 추락했다.   옛 명성과 위상을 다시 세우려려는 각오가 대단하다.   그 워밍-업으로 10여년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하얀 거탑]을  다시 방영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 방송을 기대하면서, 2007년 2월과 3월에 쓴 나의 [하얀 거탑]이야기 두 개를  다시 올립니다.
 
 
 [하얀 거탑]의 드높은 인기, 권선징악에 갇히다! 070313 김 영주

 
[하얀 거탑]이 20부로 끝을 맺었다. [토지1부] [용의 눈물] [여자의 방] [애인] [쾌걸 춘향]이래로, TV드라마를 참 오랜만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보았다. 마지막 회에는 눈물까지 글썽임서 보았다. ㅠ.ㅠ 유치하게시리 -.-;; . 그러나 10부를 넘어서면서 현실적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졌다. 가난한 인권변호사가 내부고발자의 증거를 확보해나가면서 재판을 이겨나가는 모습은, 드라마에 긴박감을 주려면 일부러 그 대립각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리 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 비하면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진다.

조직폭력배만 조직이 강렬한 게 아니다. 그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매운 맛’이 있다. 지금만 그러한 게 아니라 태고적부터 그랬다. 조직은 한 쪽으론 든든한 보호막이면서도 다른 한 쪽으론 조직이 요구하는 의무나 강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직의 보호막에 기대어 살면서도 그 의무나 강요 때문에 갈등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마냥 갈등할 순 없기에 그 의무나 강요를 자기 몸에 익숙하게 길들인다. 거기에 그럴 듯한 명분을 주게 되면 조직의 생명력이 왕성해지고, 그럴듯한 명분을 잃게 되면 조직의 생명력이 시들어간다. 이익이 많고 권력이 강한 조직일수록 조직원이 자기 개성의 색깔을 드러내기 어렵다. 게다가 그 이익과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에 보이지 않는 의리와 관행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이익과 권력을 포기하고 나아가서 그 의리와 관행을 깨면서까지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건 차암 어려운 일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단단한 조직에서 살아본 사람은 체험으로 뼈 속 깊이 알고 있다. 그 옳고 그름보다도 ‘조직의 안전과 평화’가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하얀 거탑]에선 이 드높고 단단한 거탑에 박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법정의 증인으로 등장하여 자신의 색깔있는 삶을 찾는다. 그러나 색깔있는 사람은 조직생활을 잘 꾸려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살아남지 못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기보다는, “색깔있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고, 색깔없는 자가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 조직에 충실하면 자기 자신의 색깔있는 삶이 희미해져간다. 딜렘마이다. 색깔있는 삶이 자기의 개성을 만끽하는 대신에, 조직의 안전망을 포기하고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는 건 색깔있는 삶의 당연한 귀결이다. 내부고발자는 자기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다른 조직들에게 전파되어 사방팔방으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부고발자에게 세상이 왜 그렇게 썰렁해지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내부고발자들이 자기 조직에서만 물러나고 금새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나름대로 자기 일을 해 간다. 실제 세상에선 그런 정도의 손해를 입는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며, 어떤 경우엔 거의 치명적이다.

 
이 드라마의 장점이 선과 악을 뒤섞어서 현실적 리얼러티를 살려낸 것이지만, 큰 틀에서는 초반부터 권선징악이 깔려 있고 후반부로 들어서선 몰아쳐 달려간다. 내가 몸소 경험한 인생살이만을 되짚어 보면, 선과 악을 딱 가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선명하지도 않거니와, 대체로 그리 ‘권선징악’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권선징악이 우릴 맴돌면서 떠나지 않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 자기 세력의 입맛에 맞는 선악의 이데올로기로 강렬한 마녀사냥의 표적을 세워서 기존 사회질서의 안정을 도모하는 세뇌작업으로 생활 속에 뼈 속 깊이 박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는 내 자신이 채우지 못한 욕망을 위로받고 싶은 자기 보호본능이나 자기 위로용 카타르시스 때문인 것도 같다. 자기를 ‘착한 사람’이라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권선징악’을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하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가?”라는 엄연한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우린 그런 희망사항과 엄연한 현실을 자주 헷갈린다. 더구나 우리 스스로가 헷갈리고 싶어한다. 종교나 이념이 이 틈을 비집고 또아리를 틀고 들어 앉아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우린 ‘그 거룩한 순결주의’에 감복하여 엄숙단정하게 똥폼잡고 싶어한다.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보면 인간이라는 게 차~암 어리석고 비루하지만, 그게 실제 인간 세상에서 흔한 일이고 내 자신도 그렇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잘난 체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깊은 수렁인가를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앞 글에서 까페여인 강희재에게 상당한 포인트를 주었고,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 어떤 썸씽을 만들어내어 스토리가 긴박하게 재미있어지기를 상당히 기대했는데,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끝나버려 참 서운했다. 마무리를 너무 서둘러서 짜임새가 많이 헐거웠다. 방영횟수를 10회쯤 더 늘려서 그녀가 얽혀들어 사건을 좀더 화끈하게 끌고 가고, 장준혁의 죽음이나 추락을 좀더 천천히 차분하게 끌고 갔더라면 현실적 리얼러티를 훨씬 잘 살려낼 수 있었을텐데 ··· . 하지만 그 동안 허깨비 같거나 질질거리던 TV드라마가 생생한 현실적 리얼러티로 긴박한 파워게임의 스릴을 펼쳐 보여준 재미를 한껏 맛보았다. 조연들이 돋보여서 더욱 좋았다. 이 드라마로 우리 사회 전체의 리얼한 모습과 내 자신의 주변을 돌이켜 보아야지, 그 어떤 특정 직업이나 집단만을 찍어보아선 안 된다.

TV가 아무리 대중의 말초적 감각에만 매달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TV야 대중을 너무 졸로 보지 말라! 너희들이 대중을 졸로 보니까, 우리 국민수준도 졸로 보이잖아~!

*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거나 놀이를 할 때에는, 차가운 머리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열정하게 몰입해야 합니다. 냉철한 분석은 그 놀이가 끝난 뒤 적어도 1시간 대체로 하루 이틀이 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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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메거진 T]라는 잡지에서 '어느 중년 샐러리맨의 서글픈 고백'(2007/02/06)이라는 글의 일부를 퍼온 글입니다.
 
현실만큼 섬뜩한 [하얀 거탑]의 정치들
 
 ...  이쪽에도 붙고 저쪽에도 붙어 이권을 뜯어내는 모습은 섬뜩하게 현실적이다. 돈이 등장하고, 자리를 보장하고, 줄을 세우는, 선거판의 전형적인 모습이 부담스럽다고? 이런 풍경이 비단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지자체장 선거에만 펼쳐진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순진무구한 분이지 않을까. 물론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에 이 정도 로비가 이뤄지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은 들지만, 우리 세대가 속한 어느 조직이든 어느 정도의 직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비와 암투가 필요하다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도 혹은 간접적인 정보로도 충분히 체득할 수 있는 ‘상식’이다. 오히려 <하얀거탑>에서 흑색선전과 마타도어가 난무하지 않은 것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당사자들의 사생활에서부터 업무 경력에 이르기까지 온갖 ‘뒷담화’가 쏟아져 나오는 게 조직에서의 선거판이라고 해도 결코 오버가 아닐 것이다. 학연, 지연으로 맺어지고 줄을 잘 서야 출세하는 것이 슬프지만,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현실이다. 오너와 혹은 막강한 세력군과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지 못한 사람은 ‘육두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골’ ‘진골’ 반열에 오르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샐러리맨들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조직 내 누가 ‘끗발’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하고 이러한 권력구도 하에서 줄서기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아니면 집에 돈이 많던가!). 또 하나.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줄서기를 싫어하는 직장인조차도 권력 상층부에서는 알아서 줄을 세운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은 어느 학교 출신이니깐 상대 편, 이 사람은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부서에서 누구랑 같이 일했으니깐 우리 편’이라는 식으로 알아서 편 가르기를 끝낸다. 왜? 부동표가 누구를 포섭해야 할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이렇게까지 주장해버리고 나니 상당히 서글퍼진다. 청렴결백하고 눈치 안 보고 묵묵히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은 도태돼야만 하는 게 현실인 것인가. 아주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지만, 기억해보자. 장준혁의 외과 과장 자리가 아슬아슬했던 건 결코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와 같은 일이 비단 조직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업가,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 조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여기서 자유로울까? 정도의 차이겠지만 사업오더를 따내기 위해서 혹은 일거리를 위해서 로비와 접대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필수가 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한 지인은 주장했다. 우리나라에 룸싸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이 이토록 발전한 것은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 때문이라고. 누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은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할 테니. 특히 이러한 일을 ‘맨정신’으로 하기에는 부끄러울 테니. 은밀하게 술잔을 권하며 이야기하는 곳이 절실했을 테니.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말이었다. 처세술과 관련된 책들이 스테디셀러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리라.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직장인들은 고민하고, 눈치보고, 술잔을 기울인다. 젊었을 때의 양심과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혹은 빠른 성공을 위해.
 
오늘날의 직장인들에게 <하얀거탑>은 아주 재밌는 드라마다. 그저 ‘뒷담화’로만 오고가던 얘기들이 화면으로 생생히 전개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모른다. ‘미디어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잠시 인용한다면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는 그래서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현상을 비춰주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끄럽고도 서글프다. 나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서. 우리 샐러리맨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하얀거탑>은, 참 슬픈 드라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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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8-02-04 (일)
ㆍ추천: 1  ㆍ조회: 4273   
#10여년만에 다시보는 [하얀 거탑]의 재미와 감동
 
# 문화방송 MBC가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게 시달려서 가장 나쁜 방송으로 추락했다.   옛 명성과 위상을 다시 세우려려는 각오가 대단하다.   그 워밍-업으로 10여년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하얀 거탑]을  다시 방영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 방송을 기대하면서, 2007년 2월과 3월에 쓴 나의 [하얀 거탑]이야기 두 개를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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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이 남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TV드라마에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관심을 꺼버렸다. 우연히 일요일 아침에 일본판 [백색 거탑]을 보게 되었다. 확 땡겼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본판 원본소설과 만화가 있단다. 한국판 [하얀 거탑]이 훨씬 재미있다는 말이 무성하였다. 이미 10회까지 방영되었단다. 만사를 젖히고 이미 방영된 [하얀 거탑]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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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판보다 한국판이 여러모로 두드러진다. 한국판을 보지 않았더라면, 일본판도 재미있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판을 보고나니 일본판은 더 이상 땡기지 않았다.( 설사 그렇더라도, 뉴튼이 자기의 만유인력이론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서서 이룩한 열매”라고 하였듯이, 한국판도 일본판 거탑의 지붕 위에 다시 몇 층을 더 높였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하겠다. ) 음악이 드라마의 긴박함을 훨씬 잘 살려낼 뿐만 아니라, 훨씬 깔끔하고 산뜻하다. 수술장면이나 병원분위기 그리고 엑스트라의 작은 터치가 훨씬 실감나게 정성스럽다. 좋은 작품은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옷자락의 펄럭임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스토리 흐름의 길고 짧은 호흡도 좋고 그 사이사이를 메꾸어 가는 잔물결마저도 일본판보다 훨씬 매끄럽다. 조그마한 틈새에까지도 연출자의 정성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캐릭터에 연기자가 매우 적합해 보인다. 조연들의 연기도 아주 자연스레 거의 빈틈없이 잘 짜여져 있지만, 중심인물들이 주어진 캐릭터에 더 이상 어울릴 배우가 없겠다할 만큼 적합해 보인다.( 차인표의 연기력이 항상 그렇듯이 고지식하고 굳어 있어서 좀 서운했다. )

우리가 흔히 낮과 밤을 쪼개어 말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낮에 밤이 깃들어 있고 밤에 낮이 깃들어서 서로 오고가기에 그 낮과 밤을 딱 쪼개어 말하기 어렵듯이, 우리 삶에서 선과 악도 꼭 그러하다. 낮과 밤 그리고 선과 악은 편의상 설정한 ‘추상적인 깃발로서 기준개념’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차이내어 구별지을 수 없이 서로 뒤섞여 얽혀서 끝없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져 있다.( 실은 낮과 밤 그리고 선과 악만이 그러한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 이게 이른바 자끄 데리다가 말하는 ‘Differance:차연差延’이다. 분명코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굳이 그 차이를 갈라서 구별지울 수 없는 차이들의 끝없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뒤섞임 얽힘 맞물림. ) 이 드라마가 그 어떤 드라마 영화 소설보다도 현실적 리얼러티가 생생하게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펼쳐지는 사건과 인물들이 선과 악이 미묘하게 이중 삼중으로 겹치며 뒤섞여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종합병원에서 의대교수 의사 간호사 환자들 사이에 오고가는 다양한 사연을 배경으로 하면서 인간사의 진흙탕 싸움을 그리고 있지만, 실은 인간이 여럿이 모여 사는 조직사회에는 그 어느 곳에나 많든 적든 이런 모습을 갖고 있다. 온 세상이 경쟁으로 뼈를 깍아내는 지금 우리 사회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의 겉모습이 다르고 그 농도가 다를지언정, 이런 모습은 바로 내 곁에 있고 바로 내 주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라 내 자신이 이 진흙탕에 얽혀든 듯이 실감나게 빠져들었다.

이 드라마를 펼쳐가는 연출력도 돋보이지만, 그 사건들에 얽혀드는 인물들의 연기력도 참으로 빼어나다. 곰삭은 깊은 맛이다. 특히 선임 외과과장(이정길)과 부원장(김창완)이 보여주는 현실적 리얼러티가 단연 돋보인다. 이들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 선과 악을 가늠하려는 게 오히려 유치해 보일 정도로 그 이중적 측면이 미묘하게 뒤섞이고 얽혀들며 어우러지는 절묘한 줄타기이다. 내 삶에서 이미 만났고 또 곧 만날 법한 생생함으로 바짝 다가온다. 이 둘 사이에 흐르는 크고 작은 줄다리기의 손맛이 내 손끝에 파르르르 떨려온다. 까페 여인(김보경)은 그저 중심인물의 주변을 맴도는 조연으로 흘려 넘길 수 없다. 눈웃음치며 얄밉도록 약삭빠르게 눈앞의 이익만을 쪼옥 빨아내는 그런 술집여인이 아니다. 도도한 자존심으로 다진 품격을 맵시 있는 섹시함에 녹여 담고서, 꼬리 아홉의 마력을 날카로운 발톱에 깊이 감쳐둔 백여우다.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그 영악한 매혹이, ‘야릇하게 몽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눈먼 숫사마귀처럼 온 몸을 내던져 잡아먹히고 싶은 자살충동을 일으킨다.  말을 더 잇지 않는 게 좋겠다. 치명적인 여자다. 열등감마저 덮쳐온다.
 

 
 
 
 
 
 
 
 
 
 
 
 

 
 
 
 
 
 
 
 
주인공 외과의사 김명민이 싸늘하게 뿜어내는 눈빛에 다부진 야망이 거침없이 건방지고 오금 저리도록 도저하다. 때론 부럽기까지 하다. 그 캐릭터 자체는 현실적인 리얼함이라기보다는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를 노리며 인기를 끌기 위해 일부러 ‘조작된 리얼러티’이다. 그 반대쪽에 선 ‘천사표 내과의사’는 김명민의 치열한 야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더욱 조작된 리얼러티’이다. 일본판에서는 ‘권선징악’으로 끝난단다. 애당초 출발에서부터 ‘권선징악’으로 끝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아마 야망의 외과의사는 망하고 천사표 내과의사는 흥하는 모양이다. 현실 세상에선 그 거꾸로가 거의 대부분이기에, 이게 이 드라마의 생생한 리얼러티를 많이 갉아먹는다. 스토리 중심줄기에 이런 맹점이 있으니, 이 드라마 전체의 리얼러티에 큰 문제점이 있다며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거기에 얽혀든 인물들의 행태를, 5년 10년으로 쭈욱 늘여서 천천히 진행시키며 그 일일마다 굽이굽이 사이사이 틈새 틈새에 끼어든 구구절절한 사연을 낱낱이 그려 넣는다면, 그것은 훨씬 더 생생한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담게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드라마 영화 소설들이 모두 어떤 사건과 인물의 선악과 시비를 극단적으로 몰아서 일부러 드라마틱하게 엮어내어 그 강렬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부추긴다는 걸 생각하노라면, 그 어떤 드라마 영화 소설보다도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판에선 ‘권선징악’으로 끝난다지만, 한국판이 여러모로 돋보이기에 그 깊은 감칠맛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 두고 보아야겠다. 한국판의 마무리를 보고나서, 현실 세상에서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생생한 리얼러티 그리고 이 드라마에 깔린 선악의 대립과 권선징악이 어떤 레벨에서 접점을 잡아내는지를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현실과 드라마에서 Fact와 Fiction이 서로 뒤섞이며 엮어내는 스펙트럼과 그 차이점.

*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거나 놀이를 할 때에는, 차가운 머리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열정하게 몰입해야 합니다. 냉철한 분석은 그 놀이가 끝난 뒤 적어도 1시간 대체로 하루 이틀이 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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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8-01-11 (목)
ㆍ추천: 1  ㆍ조회: 4479   
@ [1987] [강철비] [신과 함께] ?

@ 난, [1987]이 가장 좋고, [강철비]는 그 다음이고, [신과 함께]는 그냥 재밌었다.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 · [신과 함께]의 김용화 감독 · [1987]의 장준환 감독은 모두 실력있는 감독이다. 이 세 작품이 매스컴의 관심을 모은 건, 제작비를 많이 들인 연말연시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감독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용화 감독은 오락영화를 주로 만들고, 양우석 감독과 장준환 감독은 무겁고 진지한 영화를 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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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 : [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으나, [미스터 고]가 뜻밖에도 흥행에 실패하여, 이번에 새로이 각오를 다짐하면서 만든 작품이 바로 [신과 함께]이다. 보아하니, 흥행 작품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 게다가 우리 영화에서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컴퓨터 그래픽에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루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천만 관객도 무난하겠다. 천만 관객! 오락영화 감독으로서 적어도 한 번쯤은 달성해야할 타이틀이다. 축하한다. 그리고 우리 그래픽의 수준을 이런 정도까지 끌어올린 수고로움에 감사한다. 그래서 박수는 칠 수 있지만, 왠지 기립박수는 치지 못하겠다. 왜일까? 오락영화이니까, 그 무슨 예술적 작품성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재미도 있었고, 신파조이지만 슬픈 감흥도 있었다. 그러나 소재도 웹툰에서 이미 만났던 것이고, 우리 영화에선 획기적이라고 할 그래픽도 헐리우드 영화에서 이미 수없이 보았던 것이다. 그래도 해원맥 캐릭터를 연기한 주지훈과 덕춘 캐릭터를 연기한 김향기가 돋보였으나, 나머진 그저 그렇게 무난하게만 여겨졌다.
 
* 대중재미 A0(내 재미 B0),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온건 민주파 B0.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85579&mid=36902#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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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 : 그는 처음 만든 [변호인]이라는 영화 하나로 1000만 관객을 일구어냈다. 새까맣게 깊은 밤하늘에 갑작스레 혜성이 불쑥 나타나서 1000마명의 관객을 탄성케 한 것이다.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경쟁이 극도로 치열한 ‘웹툰 마당’에서 ‘글 작가’로 활약하며 오랜 숙성을 쌓고 있었다. 옛 고루함에 젖어 ‘만화’를 아직도 얕잡아보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만화판’을 조금 아는데, 그곳엔 ‘상당한 고수들’이 도사리고 숨어있다. 2000년 밀레니엄을 즈음하여 마침내 ‘인터넷 마당’이 열리면서, ‘만화판’은 글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차원의 웹툰세상’으로 들어선다. 옛 ‘만화판’의 ‘상당한 고수’가 시글시글할 정도로 많아진 것이다. 가히 ‘백가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니 양우석 같이 숨겨진 스타가 갑작스레 나타날 법도 하다. 그가 [스틸레인]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그걸 원작으로 삼아서 [강철비]라는 영화를 만들었단다.( 원작 웹툰 [스틸STEE 레인RAIN]은 MLRS : 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 다연장 로켓시스템의 또 다른 이름인데, 수 만발의 미사일의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해서, ‘강철비’라고 이름지었단다. 영화에서 개성공단을 폭격한 무기이다. ) 단박에 [변호인]의 그 먹먹한 감동이 떠올랐다. 그런 감동을 다시 만나고 싶기도 하고, 그의 두 번째 작품으로 그의 실력을 확인하고픈 심산도 일어났다. 역시나 그의 실력을 의심할 바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서 일반 관객이 그 내용을 감당하기 힘들겠다. 그래서 관객을 500만 명만 모아도 성공한 셈이겠다. 이런 정도의 시나리오를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겠지만, 참으로 벅찬 내용을 담아야하는 시나리오 자체가 안타깝다. 감독의 진정성에 박수를 보내지만,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는 욕심이 지나쳤다. 후반부 스토리의 흐름을 조금 더 간결하게 잡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 대중재미 A0(내 재미 A+),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강경 민주파 A+.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55665&mid=36785#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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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 : 내가 1957년 닭띠니까, 1987년엔 내 나이 서른이었다. 개인적으로 대학 시간강사 5년째에 아무런 희망의 싹이 보이지 않고 먹구름만 짙게 드리워 있었다. 세상은 포악한 전두환 정권이 모든 걸 짓누르고 있었다. 내 성격에 아직 구김살이 없어서 그런 역경을 그 동안 잘 견뎌왔지만, 1987년은 수렁에 빠져 그 진흙탕이 무릎위로 차오르는 듯한 어둡고 무거운 서른 시절의 첫 시작이었다. 광주항쟁에 살아남은 죄책감과 전두환 군사정권을 향한 분노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갔다. 이 영화의 배경이 서울이지만, 그 당시 내가 경험한 개인적 사회적 분위기는 꼭 그대로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가 그걸 잘 그려가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영화 안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래서 그 시대를 생생하게 경험한 세대에게는 가슴이 저미는 영화이고, 이 시절을 잘 모르는 세대에게는 [응답하라 1988]과는 또 다른 그러나 꼭 알아야할 ‘그 때 그 시절’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아주 잘 만든 영화이고, 꼭 보아야 할 영화이다.

장준환 감독! 난 그의 작품을 2003년에 광주극장에서 [지구를 지켜라]로 처음 만났다. 매우 기발했다. 겉으론 SF영화 같기도 하고, 코메디 같기도 하고, 유치찬란한 듯도 하지만, 그것은 이 세상을 풍자하려는 ‘블랙 코메디’를 위한 연출기법일 따름이다. 이 세상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블랙 코메디’로 만드는 게 가장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려운 작업을 완전하게 만들어냈으니, 결코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감동하고 감탄했다. 가히 천재라고 할 그 능력에 깜짝 놀랐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렇게 10년을 기다린 끝에 만난 영화가 [화이]이다. 좀 파격이 있긴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에서 만난 전율과 감동이 전혀 없었다. 실망했지만, 그의 기발한 천재성과 능력을 믿기 때문에 그 다음 작품을 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엔 1987년의 6월항쟁을 둘러싼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화의 소재가 비록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능력은 보여 줄 꺼란 기대를 해 보았다. 기본적으로 다큐일 수밖에 없다면 ,그는 그걸 과연 어떻게 요리할까?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던 바 그대로, 아주 잘 만들었다. 이한열의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그 때 그 시절’이 온 몸으로 저며 들어오면서 복받치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싶었다.
 
* 슬픔 : 난 A특급(‘그 때 그 시절’이 몸에 베인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58191&mid=37067#tab

* 관객수 : [신과 함께]는 1000만 명을 너끈히 넘겠지만, [1987]과 [강철비]는 500만 명쯤 모일 듯하다. “지난 겨울에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혁명’을, 1987년 6월항쟁이라는 ‘미완의 혁명’을 완성시켰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1987]을 보자!”는 캠페인을 벌인다면, 1000만 명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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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7-12-23 (토)
ㆍ추천: 0  ㆍ조회: 4202   
강추@[위대한 쑈맨], [시카고]에 버금가는, 아주 잘 만든 뮤지컬 영화

7080시절에 영화판은 추석과 설날이 가장 큰 대목이었다. 그래서 극장가에선 ‘추석특선’과 ‘설날특선’이라는 구호를 소리쳐 외치며 손님을 유혹했다.( 음력 ‘정월 보름날’까지 끌어들여 ‘대보름 특선’을 외치던 때도 있었다. )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게 여름방학이나 피서 휴가철 그리고 수능시험 날이나 겨울방학과 연말연시로 바뀌었다. 올해도 12월에 들어서자마자, 그 대목을 노리는 야심작들이 빵빠레를 울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우리 영화 [강철비] [신과 함께] [1987]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 [스타워즈] [위대한 쑈맨]이다. [스타워즈]는 일찌감치 식상해서 그 수명을 다한 줄 알았는데, 또 무슨 이야기가 있다고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감독의 스타일 그대로, [강철비]와 [1987]은 진지하고 무거운 작품이고, [신과 함께]와 [위대한 쑈맨]은 감각적 오락물이다. 이번에는 비록 미국영화 냄새가 펄펄 나지만, 너무나 재미있게 본 [위대한 쑈맨]만 이야기하고, 바로 다음 주에 우리 영화 [강철비] [신과 함께] [1987]을 함께 아울러서 이야기하겠다.( 무려 두 달이나 영화이야기를 쉬었더니, 영화이야기에 걸신이 들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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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쑈맨], ‘위대한 쑈맨’이라기보다는, ‘위대한 쑈’라고 허풍을 칠 만큼 ‘잘 만든 뮤지컬 영화’이다. 그래서 ‘위대한 영화’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시카고]이래로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훌륭한 뮤지컬 영화’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주연배우들과 조연배우들의 연기력뿐만 어니라, 그걸 뒷받침하는 ‘시나리오 · 영상 · 의상 · 음악 · 미술 · 무대 · 조명 · 편집 · · · , 그 모든 게 화사하게 피어난 꽃처럼 돋보인다. 뮤지컬 영화답게 노래와 춤이 매우 그렇다. 노래들이 하나같이 멋들어지게 귀에 감겨드는 호소력 있어서, 주제가(This is Me)는 물론이려니와 나머지 곡들 그리고 잠깐 스쳐가는 노래마저도 다시 듣고 싶을 정도였다. 곡이 훌륭한데다가, 가사도 상투적으로 겉돌지 않고 실감난다. 절도있고 화려한 동작으로 펼쳐보이는 군무는 저절로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인다. 카메라 앵글도 다양하게 잡아서 더욱 북돋운다.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06360&mid=36976#tab

주인공들도 모두 뛰어나다. 휴잭 맨은 워낙 유명하니 더 말할 게 없다. 그가 노래도 제법 잘한다는 걸 [레미제라블]에서 처음 알았다. 그러나 높은 음을 잘 다루지 못하는데, 이 영화에선 그 약점을 잘 감추고, 그가 잘 할 수 있는 재능을 한껏 잘 살려냈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훌륭하지만, 레베카 퍼거슨의 첫 노래에 나는 넋을 잃었다. 노래 자체가 좋았고 가사도 좋았지만, 그 노래를 이끌어가는 자태와 음색이 발산하는 고결한 아우라는 가히 ‘천사의 여왕’이었다. 그러나 그 첫 노래의 만남 뒤로, 그녀는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자아내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유부남 휴잭 맨을 탐내는 팜므파탈로 변신한다. 그 선과 악 사이를 오고가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연기의 여왕’이었다. 영화가 끝나고서야, 난 이 ‘천사의 여왕’과 ‘연기의 여왕’이 주는 매혹의 도가니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녀는 이미 [미션 임파서블 5 : 로그네이션]에서 톰 크루즈의 파트너 미션-걸로 보여준 화끈한 액션이 날 꼼짝없이 사로잡았지만, 그 땐 그녀의 다음 영화에서 노래로 내 넋까지 빼앗아 갈 줄은 까맣게 몰랐다. 이제 그녀는 ‘나의 여신’이다.

시들어가는 째즈를 다시 살려보려는 갈망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곁들여서 음악과 춤을 섬세한 심리적 터치로 그려낸 [라라랜드]에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관객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 음악영화인지라 그러했겠지만, 영화 스타일이 ‘포도맛과 사과맛’처럼 다르기 때문에, 비교대상이라기보다는 취향차이라고 하겠다. [시카고]에 비교할 만하다. 리차드 기어와 휴잭 맨 · 르네 젤위거와 미셀 윌리암스 · 캐서린 제타존스와 레베카 퍼거슨, 그리고 그 춤과 노래 · 그들의 연기력 · · · . 그 모든 게 막상막하다. 아, 갑자기 [시카고]가 보고 싶다! 2003년이었니까, 노사모 활동으로 한창 방방거리며 팔팔했던 시절이다. ‘그때 그 시절의 영주’가 그립다. 아휴, 눈물나네 · · · ㅠㅠ!!!

* 대중재미 A+(내 재미 A+++, 이토록 높은 점수는 처음입니다. 제가 레베카에게 넋이 나가서 이렇습니다.),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민주파 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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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7-12-19 (화)
ㆍ추천: 1  ㆍ조회: 4680   
#웹툰[신과 함께] 꾸질한 토속신앙에 신선한 바람이 불다.
 
* 웹툰 [신과 함께]가 영화로 만들어져 내일 상영한답니다.  2012년에 내 영화이야기에서, 이 웹툰을이야기헸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서 그 글을 찾아서 다시 올립니다.  이 웹툰을 너무나 재미있게 보아서, 그 영화도 잔뜩  기대가 만발합니다.  지난주에 개봉한 [[강철비] 그리고 내일 개봉할 헐리우드 영화 [위대한 쑈맨]도 함께 아울러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남한산성]을 이야기한 게 10월 14일이니까, 영화 이야길 한지 두 달이나 지났습니다.  글발이 잘 오를지 조금 걱정이 앞서네요  ^.^ 
 

 
Daum과 Naver의 웹툰코너엔 만화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징기스칸의 일대기를 만화로 그려낸 허영만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가 끝나고 나서, 그 허전함을 메우려고 [이끼]로 크게 히트를 친 윤태호의 [미생未生]을 재밌게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 아이들에게 “요즘 젤로 인기있는 만화가 뭐냐?”고 물었더니, 둘 다 주저없이 [신과 함께]를 꼽았다.

신? 무슨 신? 우리 토속신앙에 얽혀 있는 갖가지 귀신들을 소재로 하였다. 첫 날엔 20편쯤 보았다. 그림솜씨가 별로 좋지 않아서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캐랙터의 스타일을 잘 잡아내서 금방 친숙해지면서 편안해졌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참 좋았다. 대사도 위트가 반짝이면서 감칠 맛있다.  무엇보다도 내 맘을 잡아끄는 건 두 가지. 마치 교과서 표준말의 딱딱함에 익숙해져 가다가 토종 사투리의 정겨움을 만난 듯이, 그 동안 그리스로마 신화에 익숙해지면서 까맣게 잊혀져 가던 전통무속의 귀신들이 울 엄니 체취와 어우러지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걸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까발리고 파헤치다가, 그 슬픔과 원한을 포근하게 풀어가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상투적이지 않고 현실감으로 생동하게 잘 그려내서 가슴 뭉클하였다. 고리타분한 권선징악과 찌질하게 시들어가는 토속신앙을, 오늘날 사회문제에 엮어 넣어서 실감나게 그려내는 게, 참 신선하다.

지난 100여 년, 우린 서양문물만 만나면 주눅들고 쪽팔렸다. 동양문명은 기절했다. 거의 죽음이었다. 처절하게 좌절했고 산산이 부서져 무너졌다. 그러다가 이제 겨우 어슴푸레 깨어나고 있다. 그걸 여러 가지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막걸리’가 되살아난 게 그걸 가장 상징한다. 막걸리, 70시절에 내가 만난 막걸리는 골패고 꾸질한 냄새뿐이다. 안주야 홍어가 좋지만, 김치가 가장 무난하고 콩나물 미역줄기나 달짝지근한 고구마조각 또는 꼬막이나 전쪼가리다. 엉겁결에 마시긴 하지만, 다음 날엔 지겹다. 꾸질한 토종이요, 철저한 서민이다. 폼나는 맥주나 우아한 포도주에 밀려서 추레하게 널브러진 김치쪼가리에 누룩내 찌든 구석지로 몰린 막걸리. 무당과 점쟁이 그리고 울엄니가 보여준 토속신앙에서, 난 항상 막걸리가 떠올랐다.


근데 어르신들은 “막걸리가 참 좋은 술이여~!”란 말을 종종 하신다.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별로 못 마시는 술이지만, 맥주도 마셔보고 양주 포도주도 마셔봤다. 내겐 소주가 두루 맞다. 어느 날 ‘쌀 막걸리’를 만났다. 그 첫 만남, 시원하고 개운했고, 다음 날도 가뿐했다. 소주보다 훨씬 좋다. 막걸리가 살아났다. 나에게도 살아나고 세상에서도 살아났다. 그 추레하고 꾸질한 막걸리가 산뜻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엔 이 만화로 그 추레하고 꾸질한 토속신앙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토속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재밌게 다가왔다는 게 그 무엇보다 기쁘다. 그토록 푸대접 당하던 게 이토록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게 참 반갑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내게 [서양의 神과 동양의 道]라는 책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이 책을 ‘샤머니즘의 새로운 해석’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이 만화와 만남은, 나에게 우연인가? 필연인가?

[신과 함께]의 귀신들은 우리만의 토종이 아니다.  중국의 유불선儒佛仙에 우리 민속신앙이 뒤섞였다. 문화는 긴 세월 속에서 이리저리 뒤섞인다. 뒤섞이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잘못 끌고 가는 게 나쁘다. 그게 샤머니즘이면 야만이고 고등종교이면 문명인 게 아니라, 샤머니즘이든 고등종교든 나쁜 쪽으로 가면 나쁘고 좋은 쪽으로 가면 좋은 거다. 문제는 그 선악 · 시비 · 우열의 기준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가늠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 두 사람의 선악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집단의 총체적 시스템 작용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이 만화의 내용이 토속신앙이냐 외래신앙이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동양문화는 서양문화에게 멸시당하고 천대 받았다.  우리 스스로도 그러했다.  이 만화가 반가운 것은 그 멸시와 천대에 가장 시달리던 토속신앙을 재미있고 현실감있고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나 청소년 젊은이들에게 적극 권장해야겠다.

* 대중재미 A0, * 작품기술 B0, * 작가의 관점과 내공 : 서민파 A0. 그림솜씨가 수준이하여서 싸구려 D+이지만 캐릭터를 포착하여 그려내는 솜씨가 A0로 상당히 좋아서 평균잡아 작품기술을 B0로 주었다. 작가의 관점은 사회파와 민주파 냄새가 함께 있어서 아울러서 '서민파'라고 하였고, 그걸 일상생활 속에 섬세하게 잡아내어 표현하는 내공이 높다.

일본에 수출한다니, 만화왕국 일본에서 열렬한 호응이 있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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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항쉬범희소탁
ㆍ작성일 2017-10-29 (일)
ㆍ홈페이지 http://www.heeso.co.kr
ㆍ추천: 0  ㆍ조회: 3829   
가을 산행 안내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서로 아껴주고 솔선하는  자랑스런 광주일고  고마운 51동기들께]

■.재경 51회 가을 산행 오늘 입니다!

●가을산행:10.29. (일).10시~
☆안산길(7km.약 3시간)
○출발 집결지: 독립문역(3호선) /4번 출구. 독립기념탑 앞

○뒷풀이 식당(동영갈비)
02.722.3033.

@행사 참가비는 없네. 신나는
51가을 소풍. 맛있는 점심. 즐거운 한잔 쭈욱~~~
※친구들 모두 행복하세 건강하세. 친구가 힘이네. 서로 격려하고 아껴주며
솔선 참여로 함께 새로운 역사 만들어 가보세!

          2017.10.29.

재경 51회
회장.배춘채
총무 탁영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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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7-10-14 (토)
ㆍ추천: 1  ㆍ조회: 7953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서슬 퍼런 썰전

이 영화는 조선시대 인조시절의 병자호란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 제목이 [남한산성]인 것은 그 시나리오가 김훈의 소설[남한산성]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란다. 난 소설[남한산성]을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남한산성]에 관련된 내용은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런 역사적 사건에 반드시 팩트가 있겠지만, 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그걸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수없이 다양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만든 작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게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걸 정확하게 알아야 작가의 관점과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경우가 많아서, 팩트와 픽션을 가려낸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2000년에 들어서서 팩트와 픽션이 뒤엉킨 ‘팩션’이 워낙 유행을 타면서, 픽션이 지나치게 설친다. “팩트를 그토록 뒤틀어버리고선, 그걸 ‘표현의 자유’라는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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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궁금한 게 ‘김상헌의 자살’이다. 병자호란을 이야기함에 주인공은 인조임금 그리고 두 신하 협상파 최명길과 강경파 김상헌, 세 사람이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10가지 이야기들 중에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그 자자한 이야기를 일찌감치 들어왔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후금의 홍타이치에게 삼배三拜-구고두九叩頭하며 그의 신하를 자처하는 굴욕에, 김상헌이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아들들이 알아차려서 살려냈다는 해프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시퍼런 장검으로 장렬하게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시퍼런 장검으로 장렬하게 자살했다.”는 건 감독이 만들어낸 픽션이다. 감독은 왜 이토록 지나친 픽션을 만들었을까? 자살에 실패한 뒤에 그의 행적에 그 대쪽 같은 사림士林의 기개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자살실패가 그토록 강경했던 척화파斥和派의 주장이 주변의 비웃음에 묻혀버리는 게 안타까웠을까? 그래서 이 영화처럼 “시퍼런 장검으로 장렬하게 자살했다.”는 걸로 함축하여 결말지어야겠다며 과감하게 상징하려했던 게 아닐까?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50637&mid=35864#tab

인터넷 영화마당에서 다시 예고편을 보면서, 영화 전체를 되새김질해 보았다. 그렇다. 이 영화를 겉으로 보기엔 최명길의 협상파와 김상헌의 강경파가 세치 혓바닥의 서슬 퍼런 칼날을 휘날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 싸우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속으론 감독이 김상헌 쪽에 서서 영화의 모든 걸 짜 맞추어 가고 있다. 과장하자면 최명길(이병헌)마저도 김상헌을 돋보이게 하려는 조연이나 페이스-메이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① 이 영화가 냉혈한 김윤석으로 시작하여 따뜻한 김윤석으로 끝난다. ② 중요한 조연들(특히 대장장이)이 김윤성의 캐릭터를 미화하는 역할을 한다. ③ 김윤석은 보수파의 실세이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보수파 벼슬아치는 저질이다. 그 저질들은 그를 더욱 훌륭한 ‘보수파’사람으로 돋보이도록 만든다. ④ 그의 자살 실패가 찌질하게 못난 사례로 오늘날 역사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장렬하게 자결’하는 모습으로 드높여서 그려낸다. 이걸로 미루어 보건데, 이 감독은 ‘참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제’하는 ‘참다운 보수세력’을 목마르게 갈망하는 듯하다.

나는 이 감독의 관점을 ‘보수파’로 보아야할지 ‘민주파’로 보아야할지 고민스럽다. 그의 다른 작품[수상한 그녀]를 ‘보수파’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일단 그를 ‘보수파’감독으로 분류하겠다. 전쟁장면을 만드는 기술과 내공이 조금 약하다. 제작비가 부족했을까? 우리나라에 보수파 감독 중에서 내공을 잘 갖춘 감독을 만나기 참 어렵다. 우리나라 보수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런 감독의 작품에 돈 좀 써라! 매갑시 어버이연합이나 국정원에 “밑빠진 도가지에 물붓는 짓” 그만 두고, 짜잔하게시리 ‘블랙리스트’나 음습하게 만들다가 들통 나지 말고, · · · . *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보수파 A0.

이 영화에 제대로 빨려든 관객들은 주저없이 “아! 김윤석! 멋있네~!”를 먼저 내뱉은 뒤에 “역시 이병헌도 . . .”라고 찬탄하거나, 김윤석과 이병헌을 함께 찬탄하면서도 그 중심은 김윤석의 매력에 쏠려든 짤막한 멘트를 날릴 것이다. 조선시대의 역사에 자기 나름대로 얼마쯤의 노가리를 풀어낼 줄 아는 논객(?)은, 안동 김씨의 폐단이나 성리학의 근본주의적 성향에 염증 또는 사색당쟁에서 노론의 오래 묵은 패악질 · · · 을 주절거리며 이 영화에 약간 씨니컬한 비아냥을 토해낼 것이다. 이게 모두, 감독이 겉으론 은근하면서도 속으론 노골적으로 김윤석을 미화하는 연출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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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영주
ㆍ작성일 2017-08-05 (토)
ㆍ추천: 0  ㆍ조회: 3542   
@[택시 운전사]로 ‘5,18정신의 전국화’를 이룩하는 디딤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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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오월 광주의 5.18을 담아낸 예술작품들에서, 내가 가장 높이 손꼽는 건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다. 그 가사가 참 훌륭하지만, 그 노래가락에서 가슴에 차오르는 장엄함과 비장함은 그 어느 작품도 따라오지 못한다.( 풍문에 “5.18을 추도하는 노래”라는 정오차의 ‘바위돌’도 이에 버금가는 감동이 있다. ) 대중들이 작품으로 5.18을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TV드라마 [모래시계]다. 그러나 그게 그 옳고 그름을 담아서 그리지 않고 그 드라마의 내용을 전달하는 배경무대로만 보여주고 말았다. 이어서 1996년 [꽃잎]과 2000년 [박하사탕]에서는 그 비극적 슬픔을 에둘러 암시만 해주고 말았다.

2007년에 이르러서야 5.18을 주제로 삼아서 그 슬픔을 정면으로 담아낸 영화 [화려한 휴가]를 만들어서 상영하였다. 관객이 800만 여 명이 모여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내용에서 대중재미가 B0였고 작품성과 그 내공은 더 낮아서 ‘민주파 C0’였다. 5.18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용기가 좋았고, 그 때 그 시절의 5.18에 궁금증으로 목마른 사람들에게 갈증을 씻어주는 역할에 그쳤다.

2012년에야 [화려한 휴가]에서 실망감을 씻어주는 영화가 나타났다. 바로 강풀의 만화[26년]을 각색한 영화[26년]이다. 두 주인공, 사격선수 한혜진과 깡패 진구도 멋진 모습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좋은 영화는 주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조연들도 잘 어우러진다. 재미를 북돋우려고 깡패들이 등장하는데, 광주항쟁에 깡패들의 흔적은 한 터럭도 없었다. 그 당시 그들이 어디서 무얼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깡패보스가 전두환세력의 프락치 노릇을 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대중재미를 높이려고 깡패이야기를 끌어들인 걸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잖아도 광주항쟁을 북한간첩이 선동했네 어찌했네 함서 악다구니를 부리는 놈들이 있는데, 혹시나 관객들 중엔 광주항쟁에 깡패들이 활약한 걸로 오해하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된다. * 대중재미 A0, * 영화기술 B+,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0.

2017년엔 [택시운전사], 출연배우로 송강호와 유해진을 쌍두마차로 이끌고, 청소년에게 제법 인기있는 류준열까지? 게다가 5.17의 처참한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는 택시운전수들을 중심 소재로 삼아서 아기자기한 서민생활을 코믹하게 그려 가겠단다. 보아하니 그 품새가 대중재미에 상당한 정성을 들였나보다. 그해 오월의 처참한 슬픔에 코믹한 장면을 어떻게 버무려 넣을까 자못 기대가 솔깃하다. “제발 [화려한 휴가]보단 나아야 할 텐데 . . . 그래서 관객이 500만 명을 넘어서야지~!!!” <예고편>을 보니 500만 명을 넘어설 듯했다.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469&mid=35116#tab

상영하는 날 아침, 조조프로를 티켓팅하는데, 빈 자리가 맨 앞쪽에 10여 개뿐이었다. 깜짝 놀랐다. “조조프로에 이렇게 많은 관객이?” 관람좌석은 나쁘지만, 가득 찬 관객에 놀라서 만세삼창을 외칠 뻔 했다. “우리 광주만 이러할까? 전국적으로 이러하다면 1000만 관객도 너끈할 텐데 . . .” 두근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내일 아침 뉴스에, 상영 첫날 [군함도] 100만 명은 못되더라도 50만 명은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가 퍼덕거렸다. 그 해 오월 광주의 처참한 슬픔이 아기자기한 서민생활에 대체로 잘 어우러졌다. 사투리를 비롯해서 조금 서운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나리오 매끈하지 못한 점이 있지만, 대중재미로 만들어낸 픽션이 무난하게 잘 어우러진 게 무엇보다도 좋았다. 80년 5월의 무대 세트장과 생활소품에 정성이 가득하다. 연두색 코로나 개인택시와 노란 운전사 제복은 그 정성의 압권이다. “웃기는데 슬프다.”는 뜻으로 ‘웃프다’는 말이 있다는데, 이 영화가 매우 그러하다. 이 영화의 바탕에 깔린 그 촌스런 패션들이, 가히 80년대 타임머신에 올라탄 듯했다. * 대중재미 : 코믹 B+· 슬픔 A+,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0.

*****

* 5.18의 예술작품에서 내가 가장 감동한 작품 :
김태일 감독 [오월愛]
 
 

‘오월 광주’에 흔히 ‘민주’라는 낱말을 수식어로 붙이곤 하는데, 난 그 '민주'라는 수식어로는 ‘오월 광주’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왜곡되는 것 같기도 해서 써억 달갑지 않다. 그해 ‘오월 광주’는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리 할 수 있느냐? 그것도 우리 국군이!”라는 훨씬 더 ‘원초적인 그 무엇’이었다. 그 동안의 작품들은 나의 이런 불만을 씻어주지 못했는데, 이번 [오월愛]는 이 불만을 씻어주고 ‘오월 광주’의 본 모습을 가장 잘 그려냈다.  30년 묵은 체증이 화악 씻어 내려갔다.

<예고편 30초>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0339&videoId=30742&t__nil_main_video=thumbnail

그 감독은 제작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5.18기록이 정교해지는 것과 상관없이, 기록에서 제외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여전히 선명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던 ‘그 기적 같았던 봄날'의 그들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 . . 역사는 기록되어진 것만 남는다. 기록되지 않고 증언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항쟁의 기억과 현재의 삶을 담아내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내용의 작품들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만들 생각이고, 이 작품은 그 첫 출발이다.” 김태일 감독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대중슬픔 : A++,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

<예고편 90초>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0339&videoId=30610&t__nil_main_video=thumbnail

앞으로 5.18관련행사에 [오월애]의 예고편(30초와 90초)을 '5월을 상징하는 국민의례'의 가슴경례하는 첫 장면으로 상영하면 좋겠다. 그리고 [오월애]90분 영화는 매년 5.18행사 기간 동안에 중요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금남로나 도청 부근 어느 자리의 노천무대에서 하룻밤에 두 번씩 며칠간 상영해도 좋겠다.  앞으로 나올 괜찮은 5월영화 또는 인권영화나 만화 노래 또는 갖가지 퍼포먼스들을 함께 펼쳐보여도 괜찮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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