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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세친구
어제 [위]운량이 전화가 왔다. 중고등학교 6년을 같이 다닌 사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전화 통화밖에 못해본 처지다. 주말에는 뭐도 있고 뭐도 있다해 저녁 여덟시에 인사동 네거리 ‘여자만’에서 보자고 했다. 의정부 사무실에서 일곱시에 차를 몰고 나오다 시간에 댈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놔두고 전철을 탔다. 운량이는 먼저 와있었다. 30년만에 만난 친구는 옛 애인을 바라보듯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모습에도 나처럼 중년의 오후가 드리워있었다. “야, 너 꼭 카자흐스탄 사람 같구나.” 나의 콧수염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거기 가 살라고 그래.” “언제 갈건데?” “언제든 가긴 가겠지.” 96년에 카자흐스탄의 칸텡그리라는 산에 갔을 때 전생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후 거기 가 살 궁리로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 교수과정 연수를 하고 러시아어도 배우고 하면서 ‘중앙아시아의 꿈’이라는 이름의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늦장가를 가 열 살밖에 안된 아들은 ‘중앙아시아의 털’이라고 부르지만. 조금 있으니 [신]재형이가 왔다. 대학 다닐 때 보고 처음인데 머리는 반백이고 몸도 많이 나있었다. “너 요새도 유도 하냐?” “고등학교때 정선생님한테서 초단만 따고 그만뒀어. 대련을 하는데 상대방의 발뒤꿈치가 부서져버렸거든. 내 장기인 안다리 기술을 상대가 자꾸 피하길래 받다리로 업어치기를 하면서 홧김에 팔을 안 굽히고 던져버렸더니 매트 끝 나무에 발이 부딛쳐 뼈가 박살이 났어. 난 격투기를 하면 맨날 이래. 군대에서는 유도 좀 했다고 군단 대항 씨름대회 코치를 맡았어. 코치니까 내가 선수로 나갈 일은 없었는데 상대편 선수들이 완패를 당하자 30만원을 걸었던 저쪽 군단장이 코치들끼리 붙여보자고 한 거야. 상대가 워낙 거구라 서너가지 기술을 동시에 걸어 넘겼더니 10분 동안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야.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그 뒤로 격투기 비슷한 건 안해.” 열한시쯤 돼 재형이 차로 운량이집 거쳐 우리집으로 갔다. 우리집은 은평구 구산동이고 재형이네는 그 옆 갈현동이다. 차가 베엠붸여서 “이 차는 뭐가 좋냐”고 물어보았다. “동생이 베엠붸 광주대리점장이라 싸게 구했어. 98년에 8천만원짜리를 4천 얼마에 샀으니까. 에어백 열여섯개 외에도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장치는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아. …… 이 차는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미끄러짐 경고등이 들어와. 산길은 그때부터 얼 수 있다는 거지. …… 중앙일보 다닐 때 가을, 새벽 골프를 치러가는데 골프장 들어가는 길에 차들이 널부러져있는 거야. 꼭두새벽 산길이라 60키로 이상씩 밟았겠지. 그렇지만 나는 경고등을 보고 속도를 줄였어. 덕분에 안전하게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는데 골프장 사장이 어떻게 나만 무사히 올 수 있었느냐는 거야. …… 사람이 죽을 확률은 운전하면서가 가장 높잖아? 1억원 가진 사람은 전세 2천짜리 집에 살더라도 차는 이렇게 좋은 걸 타야할 것 같아. 이건 허영이나 사치가 아니야.” PS 손호상총무의 근황 보고 재촉에 겸연쩍은 생각이 들어 한 글 올려본다. 역촌동에서 하던 호프집 접고 인사동에 남도음식주점 ‘여자만’을 열었다고 하면 꼭 광고하는 것 같아 거기서 친구들 만난 이야기를 풀었다. 글에서는 내 사무실이 의정부에 있는 것으로 나와있는데 사실이다. 경기북부신문이라는 주간 지역신문 편집위원장으로 간지 한 달쯤 됐다. 031-829-9963 011-9143-8848  박하석: 인사동 사거리에 가서 '여자만'을 찾아 봐야겠다. '여자만'에서 친구를 만나고 싶다. -[04/18-09:23]- 신재형: 기성이가 취했던 모양이다. 몇가지 기술에 오류가 있지만 고칠 권한이 없으니 어쩌지?-[04/20-2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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