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마이뉴스 > 창간9주년을 기념하는 ' < 워낭소리 > 특별단체관람 및 이충렬 감독과의 대화'가 16일 밤 서울 중구 삼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렸다. ⓒ 권우성

이충렬 감독 "이 대통령과 영화관람 원치 않았지만..."

이 감독은 "한미FTA 반대 시위대 앞을 소가 지나가는 장면에서 앞쪽 관객들의 웃음 소리는 자연스러웠지만 내 자리부터 뒤쪽으로는(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앉음)에서는 억지 웃음소리가 났다"며 "관람석 앞쪽과 뒤쪽의 웃음소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 소개했다. 감독의 말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감독은 또 이 대통령과의 영화 관람에 대해 "원치 않은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부터 세운 원칙이 < 조선일보 > 와 푸른기와(청와대) 쪽은 인터뷰하거나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며 "청와대의 요청을 피하고 싶어 처음엔 고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에서 적이라고 해도 만나서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것인데 정부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을 만나서 독립영화계의 이야기를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어 참석하게 됐다"며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는데 대통령에게 잘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독립영화는 꿈꾸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아이에게 자양분을 줘서 잘 키우면 독립영화가 산업의 역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랄 텐데 정부는 잘나가는 것만 키워주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어린 아이와 어른을 권투시합 시켰는데 아이가 이긴 이변이 일어난 게 < 워낭소리 > 의 흥행"이라며 "하지만 이 이변이 전체 독립영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척박한 독립영화계에서 꿈 하나 가지고 영혼을 배불리기 위해 했던 작품활동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선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촬영 시작하고 3년을 더 산 소... 제작기간 늘어 타박 받아

▲ < 오마이뉴스 > 창간9주년을 기념하는 ' < 워낭소리 > 특별단체관람 및 이충렬 감독과의 대화'가 16일 밤 서울 중구 삼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렸다. ⓒ 권우성

이 감독은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 워낭소리 > 제작과 관련된 뒷이야기도 들려줬다.

이 감독은 "처음부터 소가 죽을 때까지 촬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길어야 6개월에서 1년 정도 살겠다 싶었던 소가 3년을 더 살았다"며 "제작기간이 길어지면서 돈을 대는 제작자로부터 소 언제 죽느냐는 타박을 많이 받았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감독은 소가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장면에 대한 연출 논란에 대해서도 솔직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소 장사 지내는 비용은 내가 부담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할아버지는 소가 죽으면 장례를 치러주고 자신이 상주를 할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소가 죽고나자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 하셨다. 할아버지 아드님도 일 때문에 이 일을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도와드린 것이다. 일부에서는 할아버지가 리어카에 죽은 소를 싣고 가서 삽으로 땅을 판 다음 묻어주는 게 리얼리티 아니냐고 하는 경우도 있더라.(웃음)"

이 감독은 또 30분짜리 테이프 200개에 해당하는 촬영분을 놓고 1년 반 동안 씨름하면서 아쉽지만 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나무를 할 때 무조건 아카시아 나무만 베어오시는데 그 이유가 아카시아나무를 일제시대 때 일본이 심었기 때문이었다"며 "이런 이야기들이 들어갈 경우 한국의 정서상 할아버지의 삶이 너무 영웅화될 수 있을 것 같아 잘라냈다"고 말했다.

또 "폐경을 한 지 오래된 늙은 소가 송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일 나가서는 집을 보고 울고 송아지도 어미가 아니라 늙은 소 곁에만 붙어 있는 등 보통 관계가 아니었다"며 "하지만 늙은 소와 송아지의 관계는 곁다리가 될 수밖에 없어 많은 부분을 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할아버지·할머니 사생활 침해와 출연료 논란 안타까워"

▲ < 오마이뉴스 > 창간9주년을 기념하는 ' < 워낭소리 > 특별단체관람 및 이충렬 감독과의 대화'가 16일 밤 서울 중구 삼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렸다. ⓒ 권우성

이 감독은 < 워낭소리 > 의 흥행으로 벌어지고 있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사생활 침해와 출연료 논란에 대해서 거듭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수익금의 10%를 할아버지·할머니께 드리고 감독인 나에게는 제작사에서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왔다"며 "상업영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공헌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보도가 나와 너무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언론이 수익과 돈에 관심을 쏟으면서 9남매 형제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고 할아버지·할머니가 협박 전화에 시달리는 것도 더 심해질까 걱정"이라며 " < 워낭소리 > 관객이 늘어날수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잠적하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그렇게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오늘 또 어느 언론에서 할아버지·할머니의 집을 찾아갔다 왔다"며 "제발 그분들의 삶을 존중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끝으로 "이 땅의 대학생들에게 한말씀 해달라"는 대학생 관객의 요청에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말고 멋대로 살라"고 조언했다.

"내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더라. 독립PD로 활동하면서 쌀 떨어진 지 오래됐지만 결국 하나만 열심히 파니까 됐다. 성공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만원 있으면 바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행복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과소비를 해야 한다. 나에게는 오늘과 모레의 꿈이 있을 뿐 내일은 없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말고 멋대로 살자."

이날 행사는 < 오마이뉴스 > 창간 9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렸으며 150여 명의 오마이뉴스 독자와 시민기자들이 함께 < 워낭소리 > 를 감상하고 이충렬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는 예정됐던 1시간을 훌쩍 넘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