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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생각에 명치 끝이 아립니다.
미국에 출장갈 일이 생겨 나녀온 김에 캐나다 토론토 인근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을 찾아본 후, 오늘 새벽 4시에 14시간의 비행끝에 인천 공항에 내렸습니다. 새벽 잠을 뿌리치고 마중 나온 마누라의 얼굴이 이뻐보였습니다. 목욕하고 옷 갈아 입은 후 지금 막 회사에 나왔습니다. 아들은 그 곳 캐나다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듯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보니 아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었고, 월간 성적 보고서의 내용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이제 대학 진학을 위해서 좀 더 높은 목표를 잡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아들 하숙집에서 이틀 밤을 잤습니다. 일부러 아들이 쓰는 작은 침대에서 살을 비비면서 꼭 껴안고 잤습니다. 시내의 한국식품점에서 쌀,종가집 김치, 쇠고기, 참기름, 그리고 미역을 사왔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토요일 낮에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서 아들과 동료 하숙생인 멕시코 애들 및 하숙집 아들에게 대접했습니다. 한창 먹성이 좋은 놈들이라서 무섭게 먹어 대더군요. 나는 간혹 일요일 아침에 식은 밥을 모아서 김치볶은밥을 만듭니다. 소고기를 깎둑 썰어서 소금간을 한 후 마가린으로 살살 볶습니다. 그리고 김치는 김치대로 볶아 두고, 양파,양송이버섯,당근도 따로 볶습니다. 밥은 고들꼬들해질 때까지 간을 맞추면서 후추를 뿌려 볶은 후 나중에는 준비된 재료를 모두 한 솥에 넣고 잘게 썬 파와 통깨 및 참기름을 쳐가며 비벼냅니다. 일요일 오후에는 다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서 그집 식구 모두에게 대접했습니다. 이란의 인텔리 출신인 하숙집 주인네와 저는 뜻이 잘 맞았습니다. 점심을 끝낸 우리는 애들 이야기, 미국에게 시달리는 모국의 어려움, 이민생활 이야기, 그리고 젊은 날의 고생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어가 짧아서 힘들기는 했지만 단어 몇개를 합성하고 눈빛과 몸짓으로 이야기하면 뜻은 충분히 통합니다. 그집 아줌마는 자기가 우리 애를 잘 키워서 캐나다의 의대나 치대에 보내 줄테니 걱정말라고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 독학으로 온갖 시험에 통과해온 자기가 그 방면에 선수라는 겁니다. 두사람이 다 박사인데, 건축공학 박사인 아줌마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치과대학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하숙을 치는 것은 생활비 조달의 일부인 셈이지요. 말안듣는 십대 사내 세 놈을 등하교 시키며 밥을 해 먹이는 아저시의 등골이 휠 지경이었습니다. 온 몸에 인생의 고단함이 가득 밴 것 같은 아저씨는 일요일인데도 인근 도시의 대학에 프로젝트를 한다며 아침 일찍 나갑니다. 피곤한 삶의 여정은 어디가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애들의 음식타령을 듣다 못해 아저씨에게 대책마련을 촉구했더니 급기야 일요일에는 그 문제로 당사자간 회의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식단 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이었습니다. 서로가 불만이 쌓여 있고 엄청나게 신경이 서 있는 예민한 문제였습니다. 애들은 맛없어서 못먹겟다고 했고, 주인집에서는 해줘도 안먹는다는 거였지요. 주인아저씨가 메모지를 돌렸습니다. 문제점을 열거한 후 개선방안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문제 자체가 에민함에도 불구하고 감정개입을 자제한 채 객관화시킨 후, 일단 모두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것을 다시 정리해 나가는 모양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이런 점이 바로 서구에 교육을 보낸 보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는 애들에게 인터넷으로 요리법을 배운 후에 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드는 일에 간간히 동참하라고 권유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세시간이나 운전해서 토론토 시내의 한인타운으로 하숙생들을 데리고 가 유명한 닭갈비 집에서 내 중학교 동창인 수남이 딸이랑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키가 168Cm나 되는 영이는 체구에 못지 않게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있었습니다. 마침 학교 성적도 좋아서 미국의 괜찮은 대학에 원서를 내려고 한다고 합니다. 어떤 학교를 원하느냐고 했더니 일단 돈이 적게 드는 주립대를 알아보고 있다더군요. 든든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하고 애 사이에 작은 다툼이 일었습니다. 겨울방학때 거기 남아서 공부를 더 하라는 내 주문이 아들 생각에는 마뜩치 않은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를 낀 2주간의 겨울방학 동안 보통의 유학생들은 귀국을 하거나 여행을 다닙니다. 그러나 그 비용이 작게 잡아야 삼백만원입니다. 어쩌다 보니 남 하는대로 유학을 보내기는 했지만 늘 경비를 끝까지 댈 수 있을지 걱정인 나로서는 솔직히 그 돈이 아깝습니다. 돈도 돈이고, 기왕 유학을 갔으니 그 기간에 공부를 한단계 더 끌어 올리라는 것이 내 주문입니다. 그러나 황금같은 방학 기간에 아무도 없는 시골 구석에 박혀 공부만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은 듯 아들놈은 좀처럼 대답을 안합니다. 돈많이 든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애들이 더 잘 아는 듯 싶습니다. 따라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자기 주장도 크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헤어졌습니다. 아마 그 애는 올 겨울에 힘들지만 보람있는 방학을 보낼 겁니다. 헤어지는 일은 늘 괴롭습니다. 애는 일요일 오후에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듯 초조해 합니다. 그리고 미국에 다시 출장 오거든 다시 들러 달라고 몇번이나 말합니다. "그래야지. 맘 단단히 먹고 못된 놈들에게 휩쓸리지 말아라. 홈스테이 아저씨랑 아줌마를 잘 따르고...." 내 목소리도 속으로 기어듭니다. 차가 출발하려는데 애가 끝내 울고 맙니다. 나는 그냥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낙엽이 뒹구는 캐나다 어느 시골마을을 빠져 나오는 내 차에서 나는 울음을 참느라 애를 씁니다. 이 괴로움을 이겨내고 우리는 더 높은 단계로 나가야 합니다. 나는 그 사랑스러운 녀석이 학교를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좀 더 부지런히 돈벌이를 해야 할 것이고, 그 애는 눈물을 닦아낸 그 자리에서 잠들지 않고 공부를 해야겠지요. 귀국한지 몇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사무실에 나와 있습니다만, 이렇게라도 맘을 정리하지 않으면 아들 생각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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