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칸나꽃 추억 고병숙 2007.11.05 11:47스크랩:0 파일명: 어린아이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 방학만 되면 외가에 가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손꼽아 기다리던 날에 아홉살짜리 어린아이인 나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을 들고 외가를 향해 길을 나선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도 없는 세상에 그 어린 아들 둘에게 그 복잡하고 먼 길을 가도록 했던 부모님들의 용기가 놀랍다. 나도 자식을 키워보았지만 밝고 안전하고 교통이 편리한 서울시내에 전화까지 들고 나간 고등학생 아이도 불안하게 생각하는 아내인데.... 어머니가 챙겨주신-(선물은 대개 여름에는 참외 등 과일이었고 겨울에는 김이었다)-을 들고, 두 살 아래 동생의 손을 잡고 고향집에서 마이크로버스라는 작은 차를 타고 광주에 가서 삼남여객버스로 갈아타고 정읍에 도착하면 곰소 줄포방향 버스로 다시 갈아탄다. 어머니가 알려주신 대로 고부를 지나 신흥리 정류장에 내리려면 눈을 바짝 뜨고 비포장도로의 먼지가 자욱한 길가에 스쳐지나가는 풍경속에서 군산상회라는 간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신흥리에서 내려 국민학교 뒷길을 지나 길을 걸으면 외할머니를 볼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하였다. 작은 길을 따라 가면 몇 채의 초가집이 있고 개울을 건너는데 작은 돌다리가 있어서 외가동네는 하석교-(아랫독다리)-라고 불렀다. 전북 부안군 보안면 상림리 하석교이다. 물론 윗독다리인 상석교도 있다. 다리를 지나 작은 능선에 오르면, 아! 지금도 그리운 외가가 보인다. 여름에는 저멀리 돌담위로 키가 큰 칸나가 빨갛게 서있다. 그 칸나꽃이 얼마나 예쁜지 그리운지 지금도 칸나만 보면 그 생각에 눈물이 난다. 칸나를 등대삼아 뛰듯이 걸어가면 초록으로 이끼가 낀 돌담이 나온다. 칸나가 피어있는 마당에서 외할머니의 따뜻한 음성이 반긴다. '내 강아지들 어서 오너라' 지금은 외가에 가지 못한다. 70년대에 서울로 오신 외할머니께서 5년전 95세로 멀리 떠나시고 외할머니를 따라간 칸나도 아마 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
|





















